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빨갱이 친일 잔재설 (문단 편집) == '빨갱이'라는 용어가 친일의 잔재인가? == '빨갱이'라는 용어가 친일 잔재라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빨갱이는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으로 미루어 봤을 때 해방정국에서 등장한 [[극우]] 보수 정권의 잔재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는 진보 성향 언론인 경향신문의 논설에서 「실제 상징언어로 '빨갱이'가 대두된 것은 해방정국 이승만의 등장부터」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3032028005|언급]]된 점에서도 미루어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념에 관련없이 극우파에 반하는 이들을 빨갱이로 규정한 정황」에 대한 근거로 「중간파나 자유주의자까지도 극우가 아니면 빨갱이로 규정되었다」는([[http://www.cj-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86849|청주일보]])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344|독립신보 1947년 9월 12일의 기사를 인용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이에 대해 [[기독교 우파]] 성향 언론인 [[크리스천투데이]]는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0435|칼럼]]에서 「독립신보는 극렬 좌익지였으며, 따라서 이들이 토로하는 "빨갱이로의 매도"의 신빙성이 떨어짐」이라는 입장을 표했으며 독립신보를 [[극좌]] 언론으로 분류한 근거는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5988|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점에서 인정될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빨갱이'라는 용어가 일제 관료들에 의해 시작되어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 찍는 말로 사용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지닌다고 보기 어렵다. 참고로 당시 [[일본 제국]]이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을 묶은 카테고리는 [[불령선인]]이었으며 [[일본인]]을 포함할 시에는 [[비국민]]이라는 카테고리 또한 존재했으므로 [[사회주의]]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탄압이 조선의 독립운동탄압에만 적용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둘째로, 기념사 전문에서 "좌우의 적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을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다"고 표현했으나 일본 제국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탄압은 1910년 5월에 발생한 고토쿠 사건[* 사회주의자들의 일본 천황 암살미수]의 날조를 기점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따라서 일본 제국의 이러한 [[반공]] 성향은 본격적인 한반도 식민통치에 선행하는, 그보다도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본격적인 노선 전개와 그 탄압에 선행하는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임시정부 민족지도자들을 포함한 독립운동가 내부에서도 [[자유시 참변]]을 기점으로 반공 정서가 강화되었는데 이것이 일본 제국의 반공 정서에 동조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9/03/03/2019030300038.html|실제로 [[김문수]] 前 경기도지사 같은 경우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그럼 [[김구]] 선생님도 빨갱이로 잡혀간 거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따라서 「좌우이념의 갈등이 일제의 모략으로부터 시작된 친일 잔재다.」 라는 논리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셋째로, [[일본 제국]]의 반공 근거[* 반제국주의, 반천황제, 반식민통치 등 일본인도 해당]와 해방정국 이후 친일파들의 반공 근거[* 반민법 저지를 위한 목적으로 냉전 체제 이념대립을 이용하여 자신에 반하는 세력을 제거]는 상이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를 구분하지 않고 단순히 「해방정국의 보수우파가 친일파와 결탁했고, 친일파가 일제와 마찬가지로 반공을 지향했으므로, 반공은 친일이다」라고 주장하는 논리 또한 합리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종북몰이|무분별한 반공문화]]가 국민통합을 해쳐 왔고 사회주의 세력 축출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까지도 빨갱이로 몰려 희생된 [[제주 4.3 사건|참사]]가 근현대사에 얼룩진 점, 해방정국, [[냉전]] 체제에서 친일파가 당시 위정자들과 결탁한 과거 및 이들이 친일 과거사 청산을 피하기 위해 반공을 방패로 들고 나온 점 등은 한국 근현대사를 조망함에 있어 당연히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반공은 정부 수립 이후 자체적인 이념갈등 및 군부독재 정권시절의 영향으로 봐야 하는 것이지 이것을 그 자체로서 '일제 잔재'라고 해석하거나 나아가 '친일파가 과거사 청산을 피하기 위해서 내놓은 꼼수'라는 시각만을 강조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왜곡된 점이 있으며 이는 자칫 반공 자체를 친일잔재로 확대해석하는 데 이용되기 쉽다. [* 그리고 보통 망각하거나 심지어 거꾸로 생각하기 쉽지만 [[친일몰이]]를 한국 정치계에서 가장 처음 활용하고 또 가장 극성으로 사용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다. 이 사람은 자기 반대파를 빨갱이로 몰아넣거나 친일파로 몰아서 감옥에 보내거나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식으로 독재정치를 공고히 한 사람이다. ~~[[내로남불|정작 자신을 지지하는 친일파들은 묵인했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